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문단 편집) == 언더우드 가문과 한국 == 언더우드는 본인 뿐만 아니라 후손들 역시 한국과 연세대에 대대로 공헌하며 좋은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가문의 구성원 전원이 한국식 이름을 갖고 있으며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 아래의 인물들은 각 세대의 장남이며, 이게 이 집안의 업적 전부가 아니다. 아래에 나오는 언더우드의 직계 후손 이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언더우드의 친형인 존 언더우드 역시 연세대에 기여한 바가 크다. 친형 존 토마스 언더우드는 미국에서 [[타자기]] 생산 기업을 세워 자수성가하였는데[* 1930-40년대 미국 추리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언더우드 타자기가 바로 이 기업에서 만든 타자기이다.], 1917년 거액을 연전에 기부하여 그 기부금으로 신촌에 드넓은 교지를 매입하여 본관을 세울 수 있었다. * 2대 - 호러스 호튼 언더우드(Horace Horton Underwood, 한국명 원한경) 1890년대생으로 언더우드 집안의 2대 호러스 호톤 언더우드(Horace Horton Underwood, 한국명 원한경) 박사는 [[제암리 학살사건]]을 외신에 알렸다. 대학 인가를 받고 취임하게 된 [[연희전문학교]]장 시절에는, 자신이 미국 국적을 가졌기에 [[치외법권]]을 내세워 일제의 손에서 최현배, 정인보 등 한국어 학자들을 보호하면서 한국어 연구에 힘쓰게 했다. 또한 '한국의 배와 선박'이라는 저서를 통해 [[한선]]을 처음으로 서양에 알리기도 했다.[[https://koreascience.kr/article/JAKO200456605497921.pdf|#]]하지만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지면서 [[연희전문학교]]는 가장 많은 피해를 입게 되고, 교원 겸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이윤재(국어학자)|이윤재]] 박사와 [[한징]] 박사는 옥사한다.[* 결국 일제의 압박에 의해 연희 전문 학교에서 쫓겨나다시피 물러가게 되는데, 바로 이때 학교장을 꿰찬 이가 [[윤치호]]였다.][* 이러한 역사의 상흔 때문인지, [[연세대학교]]에는 아직까지 [[일어일문학과]]가 없다.] 원한경 박사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진 [[태평양 전쟁]] 직전에 일제를 피해 미국으로 떠났다가, 광복 후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연희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1951년 부산에서 [[한국전쟁]] 구호 사업을 돕던 중 심장마비로 병사한다. * 3대 -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주니어(Horace Grant Underwood Jr. 한국명 원일한) 언더우드 집안의 3대가 되는 손자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주니어(Horace Grant Underwood Jr. 한국명 원일한)는 1917년에 태어나 [[한국전쟁]] 당시에 유엔군으로 참전했으며, 정전 협정 당시에는 통역관을 맡았다. 전역 후에는 [[장로회]] [[목사]]가 되었으며 장로회 계열 [[미션스쿨]]인 [[한남대학교]]와 [[배재대학교]]의 설립에 이바지한다. 1980년에는 [[5.18 민주화운동]]의 실상을 해외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로 인해 [[전두환]] 정부에 의해 강제 추방당했다. 5공이 막을 내린 후 복권되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며 [[연세대]] 이사를 역임하고 2004년 1월에 한국 땅에서 삶을 마쳤다. 연세대 대학 교회 루스채플에 이 분의 이름을 딴 원일한홀이 있다. * 4대 - 호러스 호튼 언더우드 주니어(Horace Horton Underwood Jr. 한국명 원한광) 언더우드 박사의 증손자 원한광 박사는 1943년생으로 연세대 [[영어영문학과]]에서 30년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인]]의 영어 교육론에 대해 연구했으며, 한미 교육 위원단장을 역임했다. 2004년 아버지 원일한 박사가 작고한 후 언더우드 일가의 모든 고서 보관본과 근대사 자료를 기부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3대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주니어 박사가 세상을 떠난 후, 언더우드 일가의 대부분은 2005년에 한국 땅을 떠나 미국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2011년 10월, 방우영 [[조선일보]] 상임 고문의 영향으로 이사회가 교단 파송 이사에 대한 조항을 삭제[* [[미션스쿨]]인 연세대의 특성상 이 조항에 따라 이사회 가운데 1/3은 반드시 기독교단에서 이사를 보내도록 하게 되어 있었다.]하게 되자, 조선일보가 연세대 법인의 지분을 노리는 것이 아닌가 또는 법인을 사유화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쏟아져나왔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2010년대까지 한국에서 컨설턴트로 활동 중인 언더우드 박사의 3대손 피터 언더우드(Peter F. Underwood, 한국명 원한석) 씨와 4대손 리처드 언더우드(Richard A. Underwood, 한국명 원특한) 씨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협력을 얻어 연세대 사유화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http://www.kmc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33315|#]]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